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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가 야구를 한다고? 어떻게 많은 동물들 중에 고릴라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많은 운동경기 중에 야구를 한다는 콘셉트를 만들었는지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은 영화 '미스터고'는 아이들이 동물에 관심도 많고 동물이 야구를 한다고 하니 더 재미있거 하며 감상할 것 같습니다.

내 용

15살 자오 웨이웨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중국의 시골 마을에 위치한 롱화서커스단의 명물 야구하는 롤랜드 고릴링링을 가르치는 소녀입니다. 단장인 웨이웨이 할아버지는 야구 도박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렇게 웨이웨이는 폭력성이 강한 고릴라 링링에게 야구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링링은 '킥킥'대면서 화만내고 쉽게 따라 하지 않습니다. 웨이웨이가 고릴라가 싫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2만 명의 사상자를 낸 지린성 대지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고로 웨이웨이 할아버지는 죽게 됩니다. 이들은 결국 지진피해가 없는 연변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지진으로 인해 서커스단 빚을 모두 떠안게 된 웨이웨이입니다. 20억 인 링링을 팔면 10억 빚을 갚을 수 있다며 링링을 팔자는 제안을 하게 되지만 웨이웨이는 팔생각이 없습니다. 그 무렵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데 바로 한국에서 온 프로야구계의 거물 에이전트 성충수가 방문했던 것입니다. 웨이웨이는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빚을 갚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다시 할아버지가 하셨던 서커스를 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링링은 한국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링링의 첫 야구 시합에서 웨이웨이가 공을 치라고 이야기하지만 링링은 앉아서 빈둥거리며 공을 그냥 아무렇게 칩니다. 그러자 첫 공은 파울이 되고 웨이웨이는 화가 나 채찍질을 휘두르며 똑바로 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러자 앉아있다 다시 일어나며 야구를 제대로 하려고 합니다. 날아오는 공을 잘 보고 있다 쳤는데 공은 날아가 전광판에 맞게 되고 첫 홈런이 나오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를 합니다. 경기를 하면 할수록 공을 치면 백발백중 홈런을 치게 됩니다. 그러자 상대편 투수들이 공을 그냥 굴려버리거나 삼진아웃으로 링링을 그냥 보내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굴린 공도 방망이로 치니 홈런입니다. 야구로 이름을 날리자 일본 유명 구단 주니치와 요미우리구단에서 러브콜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에서 비디오테이프가 웨이웨이에게 전달되고 영상 속에는 화가 난 고릴라가 서커스단 사람들을 집어던지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습니다. 웨이웨이는 경기장에 오지 않고 링링만 야구경기장에 서게 되는데 성충수가 채찍을 휘두르며 지시하는데 치라는 공은 안치고 야구방망이를 던지게 되고 관중이 야구방망이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링링은 전광판 위로 올라가서 웨이웨이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야구 경기를 중단시키게 되고 구급대 헬기가 와서 잡으려고 합니다. 이 일로 인해 경기장에 더 이상 설 수 없게 해야 한다며 떠들썩합니다. 속상한 마음에 총수는 링링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되고 충수가 아끼는 나무들이 다 망가지게 됩니다. 중국에 서커스단에 있던 고릴라가 야구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투수로 만들려고 합니다. 링링의 인기는 점점 많아지고 tv출연도 하고 게임도 계속 나가게 됩니다. 한편 중국에 있던 라이팅이라는 고릴라는 공 던지기 연습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경기에 상대편이 포볼 하여 링링에게 공을 던질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링링의 다리가 아픈지 걷지를 못하고 병원에 가보니 무릎인대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때 요미우리구단에서 링링과 계약하겠다면 큰 금액을 제시하고 주니치와 협상을 하지 않고 메디컬테스트받은 후 이적하기로 합니다. 충수는 알았다고 했지만 수술받은 링링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누가 만들었지?

'허영만'만화 <제7구단>을 원작으로 한 작품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의 연출을 맡은 '김용화'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신과 함께 시리즈>를 만들어서 대박이 납니다. 감독은 거대한 몸집의 고릴라 링링 캐릭터를 완성시키기 위해 직접 시각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VFX기업 덱스터 디지털을 설립합니다. 미스터고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한국영화의 CG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덱스터스튜디오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을 대표하는 VFX전문 기업으로 성정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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